혼재하고 부재한다
–곽세원
고속도로 위를 달리다문득 옆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는 차를 보면 순간적으로 나의 체감속도를 잊게 된다. 자동차의 계기판 숫자는 120을 넘어선 상태인 데 말이다. 수학용어로 '상대속도'라고 하는 이 상태를 시간에 대입하면 시간역시 절대적으로흐르는 동시에 우리의 의식에 따라자유자재로 왜곡된다. 베르그송은 이를 직관적으로만 파악할수 있는 개인적인 내면세계의 일이라고 언급한 바있다. 작가 황원해의 그림 안에서도시간은 상대적으로만 흐르는 것 같다.
그의유년시절은유독바빴다. 서울 집과 김해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거듭 오갔고,서울 안에서도 이사를 10여 차례 다녔다. 그러는 동안 그의 관심은 자연스레 '공간'을 향했다. 시간이 흘러 같은장소를 다시 방문하면 낮익은 풍경은사라지고 모든 게 새로운 것들로 대체돼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작가는 왠지 모를 허무함과 이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간극을 채워준 건 낯선 풍경 사이로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한옥들이었을까.언제나 그의 그림에는 현대식 건물과 전통가옥이 함께한다. 그리고 작가 개인의 기억을표상하듯 건축의 각요소들은 다양한 형태의 레이어로 중첩되고 충돌되어 표현된다. 각기 다른시간이 침잠돼 있는 파편들이지만 그가엮어 놓은 화면 안에서 시간의 선순환적인 구조는 무의미하다. 이미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읺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세계가 그의 그림안에 존재한다.
이런가운데작가는각요소들이군더더기하나없이깔끔하게떨어지도록사실적인묘사에집중했다. 건물의 분해도가 떠오르는 이러한 표현법은 우연적인 효과나 표현주의적인 기법보다 정밀한묘사를선호하는 작가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감각보단 논리가 그의 스타일인 셈이다. "부분을 보았을 때 그 파편이 어디서 떨어져 나왔는지를유추할수 있게 하고 싶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유추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에는 "하나의 건물을 짓기 위해 투입되는수많은 부품과 수많은사람의 움직임”이 포함된다. 이쯤 되면 그에게 혼재와 부재는 결국 동의어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른다. 레이어 일부를 페인터리(painterly) 하게 줄곧 해온 평면작업에 대한 그의 갈증은다양한 표현한부분도 이러한 맥락과 상통하는 듯하다.
한편, 지난해 보안여관에서 가진 개인전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2018.12.1~15)를 보면 작가의 관심이 부재와 혼재를 '구현하는방식'으로 이어졌음을 알수 있다. 적산가옥인 보안여관은 오래전부터 작가가 전시장소로 희망해온 곳이었다. 7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러 차례 개량을 겪어지금의 서양식 외양을 갖춘동시에 내부는 일본식 창과 목조구조를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안여관은 작가에게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줄곧 해온 평면작업에 대한 그의 갈증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됐다. 전시 공간자체를 캔버스로 상정하여 그리드와 단청 문양 등을 입체로 구현하고, 여러 충위의 레이어는 홀로그램필름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캔버스의 형태 자체를 변형하고 전시되는 방식에 변화를 준 시도에서 그의 갈증은 극에 달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를 만나기 전 가장하고싶었던 질문을 던질 타이밍인 것 같았다. 돌아온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입체는 입체만의 매력이 있고, 평면은 평면만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막연한 상상으로 존재하던 것들을 잔뜩 끄집어내고 보니 오직 평면에서만 할수 있는 게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실제 공간에 구현됨으로써 되레 보는 이뿐만 아니라 작가자신의 시각과 사유를가둬버리는 한계가 돼버렸다.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더' 플랫한 이미지를 찾게 되었는데, 같은 건물이더라도 파사드(facade)에 더 많은 관심을갖게 됐다. 그와 함께 최근 우연히 찾은스크린톤은 큰 수확이었다. 더 이상 찾는사람이 없어 판매할 수 없자 무료로 배포 중이던 이것을 잔뜩 가져왔다고.
보안여관에이어그가전시하길희망한곳은예상외로화이트큐브였다.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변주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네 번째 개인전을 마친 뒤 하고 싶은게 더 많아졌다는 그가 다섯 번째 개인전에서 펼쳐보일 카드가무엇일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