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t! cut! cut! × 황재민
* 비평가 황재민과 전시 《cut! cut! cut!》을 기획한 김정인, 이은지, 황원해의 인터뷰입니다.
황재민 : 전시 《cut! cut! cut!》은 새탕라움이라는 공간에서 시작해, 웹을 거쳐 지면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공간에서 전시를 시작했을 때부터 웹과 지면으로까지 확장될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다고 하셨는데요. 물질성을 가진 회화(적 작업)이 다른 플랫폼들을 넘나들면서 전시된다는 형태가 꽤 모험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기획을 구상하게 되었나요?
이은지 : 전시의 시작은 저희 셋이 제주도에 있는 전시 공간을 제공받은 것이었어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세 작가가 제주도 공간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처음에는 그 조건이 일종의 제약처럼 느껴진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오히려 그 제약을 이용해서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전환해보았어요. 그렇게 각자의 작업 이야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하나의 키워드로 잡게 되었어요. ‘프레임’이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모든 작가들의 고민 중 하나일 것 같아요. 굳이 예술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참 다양한 의미로 작동하곤 하잖아요. 우리가 보는 핸드폰, 컴퓨터 화면도 프레임이라고 하고, 우리가 몸을 대고 있는 캔버스도 프레임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다양한 프레임들을 다루면서 전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작업이 또 다른 프레임으로 옮겨졌을 때 어떻게 하면 작업의 내용과 형식이 잘 보여질 수 있을까를 논의했어요.
사실 이 기획에는 새탕라움이라는 공간의 성격도 고려하긴 하였어요. 그곳이 씨위드 잡지의 사무실 겸 전시 공간이었기 때문에 전시가 지면으로 재단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은 과정 같았어요. 그런 이유로 지면을 사용할 수 있는지 먼저 문의를 하였고, 오프라인 전시가 30페이지 가량의 지면 전시로 이어지게 된 거죠.
김정인 : 작가가 전시를 하면 항상 홍보나 아카이브의 목적으로 웹에 노출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웹의 ‘프레임’까지 연결되었습니다. 전시를 어떻게 하면 공간적인 제약을 받지 않고 우리의 작업을 어떻게 더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누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전시 공간이 곧 지면을 만드는 공간이었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전시 공간이었기에 웹이랑 지면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첫 질문은 물질성에 관한 질문이기도 했거든요. 특히나 전부 다 회화 작가이시다 보니, 작업이 다른 ‘프레임’ 으로 옮겨졌을 때 휘발되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모두 어떠셨나요?
황원해 : 앞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는데, 처음 제안을 들었을 때 현실적인 첫 고민은 작품을 어떻게 운반할 지와 한정적인 상황에서 저의 작업 세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였어요. 저는 드로잉 작업이 거의 없고, 주로 큰 캔버스 작업을 진행하기에 더 고민이 되었던 것 같아요. 공간은 제주도에 있고, 지인들은 다 서울에 있어서 보러 올 수도 없고, 그렇다면 이 전시가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도 하게 되었죠. 이러한 상황에서 기획진과의 대화를 통해서 공간의 한계를 넘어 제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 자체가 유영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어요.
황재민 : 물질성이 중요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걸 휘발하기로 한 역설적인 선택이 흥미롭게 느껴지네요.
김정인 : 저희 셋 다 회화 작업을 해서 물질성이 휘발되는 지점에 대해서는 모두 걱정했을 것 같아요. 아무리 회화가 플랫하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미세한 깊이와 질감이 있기 때문에 휘발을 감수하고 거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자 모험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기획 내용 중 “모든 작업의 원형이 결코 실현되지 않을 불완전한 현재진행형의 전시”라는 구절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전시의 형식이 다양화될수록 종합과 완결이 구조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미리 인식하고 대응한 결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혹시 《cut! cut! cut!》을 기획할 때 참조한 다른 전시의 사례가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황원해 : 전시 방향을 정하고 기획 의견을 이야기할 때, 영상 작업을 담은 도록이 떠올랐어요. 영상 내에는 수많은 컷이 있을 텐데, 그 중 몇 컷만이 도록이라는 지면에 실리잖아요. 전시나 회화 작업보다 유동적이고 움직이는 매체에서 몇 컷을 골라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질문에 포함된 문장처럼, 완결되게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거죠. 이런 한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이은지 : 전시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새탕라움의 동선을 웹과 지면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전시들이 있었습니다. 참여 작가 중 한 분이신 조은지 디자이너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지면 디자인을 하기 전에 웹 디자인을 주로 하셨던 그분이 2015년에 전시 기간동안 전시장에 머무르며 진행한 작업 이야기를 들었어요. 키웨스트에 있는 슬로피 조스 바(Sloppy Joe’s Bar)의 외부에 설치된 웹캠 영상을 전시장 한쪽 벽에 투사하면서 시공간이 엇갈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동시에 웹으로 아카이브를 한 작업이었죠. 지금도 남아있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공간에 머무르면서 리서치했던 것들까지 쌓여 있더라고요. 명확하게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지는 계속 따라가며 살펴봐야 했고, 그렇게 쌓여있는 것을 추적하는 것이 또 다른 전시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나의 레퍼런스로 삼게 된 것이죠. 그렇게 《cut! cut! cut!》 웹 전시의 경우도 전시 전부터 끝날 때 까지의 이미지를 쌓아서 전시 형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조은지 디자이너는 제주도에 올 수 없는 상황인 이유도 조금 있었고요.
지면 전시에 참조한 전시는 디자이너 율리아 본(Julia Born)의 《타이틀 오브 더 쇼(Title of the Show)》(2009. 10. 8~11. 29, gfzk, 라이프치히, 독일)입니다. 이 전시는 전시 공간을 지면 비율로 나눠 구성하고 사진을 찍은 후 나눠 찍은 사진 하나하나를 각각의 페이지로 삼아 책이라는 결과물로 되었습니다. 지면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전시가 있었다는 것을 과정 중에 알게 되어서 그와 다르게 우리는 어떻게 공간을 재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전시 제목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가능성을 계속 남겨두려는 전시인 것 또한 재미있는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cut! cut! cut!》이라는 전시는 주제나 방향을 확실하게 제시하기보다 플랫폼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네요.
황재민 : 영상 작업 도록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해졌는데, 도록을 만드실 때 혹시 사진이 회화를 전부 다 담는다고 생각하세요? 퍼포먼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첨예한 것 중 하나가 퍼포먼스를 어떻게 기록하고 담을 것인가라는 문제잖아요. 회화를 하시는 분들도 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황원해 : 저의 경우, 최근에 진행했던 개인전 《제4의 벽》(2020. 3. 12~3. 31, 공간 형, 서울) 도록을 실험적으로 만들었는데요.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입체와 평면과의 관계가 이 도록에 담긴 것 같아요. 저는 건물의 파사드라는 입체를 계속 평면으로 그리다 보니까 굉장히 평면적으로 느껴지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크린 톤이라는 비슷한 평면 매체를 찾아서 위계 없는 화면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개인전에서는 모아레(Moire) 현상과 같은 어긋난 지점을 표현하기 위해서 공간에 시트지를 바탕으로 설치하고 위에 회화 작업을 걸었어요. 이전에는 전시 전경을 사진 찍고 도록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작업이라는 생각은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작업 개념이 바뀌고 나니까 후도록 사진 매체 또한 작업의 이미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 도록을 만들 때, 전시장을 찍고 사진을 선택하는 과정이 더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전시는 실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입장도 있고... 아직은 저도 말씀하신 지점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황재민 :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퍼포먼스보다는 페인팅이 더 사실적으로 잘 기록될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니고. 데이비드 조슬릿(David Joselit)이 회화에 대해 썼던 이야기 중에 재미있게 느껴진 게 있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가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린다고 하잖아요. 회화 역시 이런 저장 방식을 피할 수 없고, 그러니까 회화라는 게 이제 의미가 없어졌을 것 같은데, 조슬릿은 회화를 찍은 사진이 회화에 대한 ‘스코어(Score)’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얘기하더라고요. 음악에 악보가 있고 퍼포먼스에 스코어가 있듯이, 사진이 회화에 대한 일종의 기보법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죠. 이론가의 말장난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 같아서, 이런 것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전시 《cut! cut! cut!》을 결정짓는 키워드는 ‘프레임’인 것 같아요. 이는 회화 작업에 있어, 그리고 미술 전시와 그것이 보여지는 형태에 있어 무척 중요한 키워드지만, 그만큼 해석과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다양한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째서 ‘프레임’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했고, 이 키워드는 전시의 무엇을 결정했나요?
황원해 : 저희가 모두 작가이기에 기획자보다는 철저히 작가 관점에서 만들어진 전시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매체로든지 프레임에 대한 고민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결과적으로 보이는 작업물이 매체로 인해 보이는 방식이 바뀌는데도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같은지, 다른지, 그렇다면 왜 달라지는지, 작가인 저도 그런 실험을 통해서 달라지는지, 그런 것을 소통해보고 실제로 결과를 보고 싶었어요. 동시대 작가들과 이 전시를 통해 고민을 나누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희 기획진의 작업만해도 서로 다른 가운데 공통적인 것이 ‘프레임’이었고, 그렇게 기본 단위로 자연스럽게 ‘프레임’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A4 사이즈 등과 같이 기본적인 매체 단위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김정인 : 작가들에게 프레임이라는 기본적인 틀만 제공했을 뿐인데 하나의 답으로 모이지 않고 다양하게 분산되는 답변이 흥미로웠습니다.
황재민 : 그렇다면 전시를 하면서 다른 작가들이 매체를 다루는 방법에서 서로 영향을 받은 것들이 있을까요?
이은지 : 《cut! cut! cut! — index》는 오히려 자신이 집중해야 하는 부분을 더 차별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전시라고 생각되어요. 왜냐하면 전시의 구성 자체가 목차화 되듯 정렬되어 있으니까요. 전시 과정에서 각자가 프레임에 대해서 어떻게 집중하는지 계속 생각을 나눠보곤 했었는데,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각자 생각치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알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더 생각이 확고해지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황재민 : 작가 입장에서 다른 작가들과 전시를 기획하는 것도 장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또 프레임이라는 키워드는 전시가 공간-웹-지면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단계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기획자 겸 작가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공간에서의 프레임, 웹에서의 프레임, 그리고 지면에서의 프레임은 각각 어떤 변화를 드러냈을까요?
이은지 : 기획진인 저희 셋은 양면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제약을 전달하는 역할이었죠. 새탕라움이라는 공간의 크기에 따른 면적의 제약과 거리상 제약이 있었고, 지면에서는 A4 용지 크기를 염두에 두며 공간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달해야 했죠.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그 제약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했고요. 작가로서 각자 작업에 대해서 어떻게 집중을 했는지 이야기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저 같은 경우에는 그 당시에 조각 작업을 겸하면서 어떤 덩어리를 만드는 중첩적인 방식에 집중했었어요. 그래서 웹과 지면이 그 중첩된 덩어리를 다시 펼쳐놓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서, 펼쳐졌을 때 어떻게 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황원해 : 새탕라움에서는 공간에 구현된 전시지만, 동시에 평면인 지면의 프레임을 염두하고 진행되었어요. 웹은 전시를 진행하는 동안 받았던 이미지를 시간과 동선 순으로 구성해서 그런지 순간적인 프레임들이 혼재된 집합같이 보였고요. 웹과는 다르게 지면에서의 프레임은 점차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구성입니다. 예를 들자면, A4 비율로 재단된 각 작가의 작업 이미지, 벽 단위로 재단된 이미지, 전경 모습을 담은 이미지 순서로 배치되어 있어서, 시점이 점차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변화하고 있죠. 공간에 관한 인지적인 변화라고 해야 하나, 작가로서 그런게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기획할 땐 플랫폼으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그게 만들어진 후에는 작가의 시선으로 전시를 보게 되더라고요. 이은지 작가가 펼쳐지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펼쳐지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사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 때 내포된 순간적인 감정이나 그것을 업로드하면서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게 받아들여졌어요.
김정인 : 저는 《cut! cut! cut!》에서 겹쳐진 드로잉으로 구성을 했었고, 《cut! cut! cut! — index》에서는 그것들을 다시 캔버스에 소환해서 그렸습니다. 《cut! cut! cut!》에서 겹쳐진 드로잉들은 저의 선택 기준이라는 프레임 밖으로 튕겨 나간 이미지들이 재료가 되었어요. 그것들을 겹쳐보고 형상을 만들면서 그 이미지들이 연대를 만들고 또 다른 이미지로 위치가 상승될 수 있게끔 하는 시도를 해봤어요.
새탕라움 전시가 지면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재단선 밖으로 이미지들이 튕겨 나가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반면, 웹은 이미지를 방생시켜보는 시도 정도였던 것 같아요.
황재민 : 기본적으로 기획자로서 제약을 만들어 놓고 작업을 하시니까, 작업이 좀 더 자유롭고 어떻게 보면 산만해져도 용인되는 부분으로 생각하면 되겠네요. 좋게 느껴져요.
이어서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참여 작가들은 프레임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전시에 대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면 전시를 통해 참여 작가에게 ‘프레임’에 대해 질문했던 것으로 보아, 이 사실을 기획진 역시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던 것 같고요. 이것은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프레임이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의미로 종합되지 않고 작가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기획진의 입장에서는 무방하셨나요?
황원해 : 프레임과 매체에 대해 고민을 하는 작가들과 전시를 진행해보고 싶었고, 그에 맞춰서 각자 다양한 해석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바였어요.
황재민 : 포지션에 따라서 생각이 달라지는 게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이은지 : 플랫폼이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가능성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매체 이동도 가능했던 것 같아요. 《cut! cut! cut! — index》 전시 자체도 모두 다른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시 한곳에 모을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황재민 : 겹치는 질문인 것 같은데, 웹, 그리고 지면으로 옮겨지기 위해서 작업은 어쩔 수 없이 물질성을 잃고 이미지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성을 다루는 작업을 하는 (회화) 작가로서 이 손실은 최소한 아쉽거나, 어쩌면 우려되는 부분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나요?
황원해 : 저 같은 경우에는 작업에 관한 고민이 있었을 시기였어요. 그래서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콜라주 방식으로 진행한 설치 작업을 시도하였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실험 과정이 도움이 되었어요. 반면에 제가 그러한 고민없이 회화만 하고 있었으면 이 전시에 참여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은지 : 저는 원래 종이 기반의 작업을 해서 사실 제주도에서의 전시를 위해 작업을 옮기는 것에 부담이 비교적 적었어요. 작업 방식도 종이 조각들이 모여서 덩어리화 되기도 하고, 그 조각들이 다시 떨어져서 하나의 회화나 드로잉으로 남기도 하는 등 조각과 덩어리를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전시에서 조각들이 펼쳐진 느낌이 또 하나의 매체 실험이었던 거죠. 매체를 이동하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재단 또한 실제 작업 행위와 잘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김정인 : 반면에 저는 실물로 봐서 텍스쳐를 정확히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어요. 지면과 웹을 봤을 때 회화가 얇고, 평평해 보여 아쉬움도 있었지만 실험을 위해 어쩔 수 없었죠.
이은지 : 결국 《cut! cut! cut! — index》라는, 다시 실제 공간에서의 전시로 돌아왔잖아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 실제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요즘은 재단된 이미지로 보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잖아요. 대비까지는 아니어도, 재단을 염두하고 작업했을 때는 또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재민 : 작업이 본연의 물질성을 잃고 웹으로, 지면으로 옮겨 다닌다는 기획에 대해 다른 작가분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이은지 : 평소에도 매체 실험을 적극적으로 하시는 작가분들이어서 매체 이동에 따른 물질성의 손실보다는 또 하나의 실험으로 집중하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신 것 같아요.
황재민 : 주슬아 작가의 3D 프린트 작업이 처음 새탕라움에서 선보여졌다고 하는데, 일 년 동안 여기저기서 볼 수 있어서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이은지 : 맞아요. 전시마다 계속 다르게 나열되었잖아요. 아트스페이스3에서 진행된 전시에서는 또 반절로 나뉘어서 공중에 누운 형태로 보여졌죠. 다르게 설치되는 것을 보니 원래 어떤 방식으로 설치되는 작업일까 궁금하기도 하더라고요. 새탕라움에서의 전시에서는 지면 전시와 맞닿아 있다 보니까 설치하실 때부터 ‘시선’에 대한 생각이 크게 작용했겠다 생각했어요. 높이 솟은 것을 사진으로 남겨둘 때 투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실제보다 과장되어 보이는 점을 지면에 가감없이 담으려고 했기 때문에 수직 설치로 결정되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주슬아 작가의 작업은 지면 전시로 보니까 훨씬 더 생동감이 있고, 그게 시선이라는 이슈와 맞아떨어지면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오연진 작가 같은 경우 워낙 여러 지지체를 바탕으로 하는 매체 연구를 많이 하셔서 이 전시와 굉장히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사적인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네요. 기획진이자 참여 작가로서, 작업물을 웹과 지면으로 옮기는 일에 대해 각자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보게 됩니다. 만일 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존재했다면,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예를 들자면 김정인 작가 작업을 보고 드로잉을 겹치는 것이 괴로웠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시게 되었나요?
김정인 : 작업을 벽에 걸면서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포토샵으로 합성 후 출력하면 한 번에 부착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노동을 하고 있냐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지금 뻘짓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릴 때처럼 계속 그 위에 또 붓질을 얹히는 모습이랑 맞닿아 있더라고요. 완벽히 밀착된 것보다는 타카로 중간중간 심을 박으면서 조금씩 뜨거나 접히는 부분들이 오히려 제 작업과 맞지 않을까 했어요.
황재민 : 생각보다 복잡한 물질적인 노동이 개입되는 작업이었네요. 사실 포토샵으로 했으면 굉장히 빠르게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다른 작가분들은 혹시 어떠셨어요?
황원해 :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었던 기획이라 진행 과정에서 실험하는 것은 즐거웠어요. 괴로웠던 일은 코로나-19로 인한 변수 때문에 일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는데요, 개인적인 일보다 기획자로 다른 작가들에게 안좋은 상황을 전달할 때 무력감이 훨씬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이건 작가로서는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프레임은 공간, 웹, 지면 등으로 나뉜 전시를 통일하는 키워드로 작동하지만, 동시에 지면 전시를 위해 공간 전시를 위한 작업물이 A4 비율을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 등, 모종의 제한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시가 완결되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지연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통일과 지연 사이에서 프레임이 사용되면서 전시의 구조에 흥미로운 모순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기획진의 의도에서 발생했던 것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황원해 :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작가들이잖아요. 어떠한 형식으로든 전시 전후에 지면으로 발행되는 사이즈 중에서는 A4 사이즈가 가장 기본적인 사이즈라고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작가 중에 A4 사이즈로 작업하시는 분들은 없더라고요. 매체 중에 가장 기본적인 제약을 설정하고, 그런 프레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황재민 : 혹시 인쇄물이라는 매체 형식에 대해서 원래 기획진 모두 관심이 있으셨나요? 새탕라움과 씨위드에 관계에 대해서 지면 전시가 나온 맥락을 설명하셨지만, 작업적 맥락에서도 반영된 게 있는지 궁금해요.
이은지 : 리플렛들을 겹쳐서 입체화한 작업이 저의 조각적 시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종이가 입체로 변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서 그런지 레퍼런스를 볼 때 무조건 인쇄물로 뽑아서 보거든요. 지금 하는 조각 안에도 레퍼런스 인쇄물이나 저를 스쳐 간 종이들이 막 섞여 있어요.
황원해 : 저는 이전에 콜라주 작업을 했었어요. 그러다 최근에 일반적인 콜라주 작업을 하지 않게 되면서 인쇄물이 오려진 형체를 페인팅으로 그려내고, 패턴화하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전 작업이 직접적인 인쇄물과 관련이 있었다면 지금은 다른 관점으로 인쇄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김정인 : 저는 자료를 뽑아 놓는다고 해서 이미지 그대로를 옮기지 않아요. 가끔씩 필요할 때만 자료들을 뽑아두는 편입니다. 《cut! cut! cut!》을 하면서 평소보다 지류를 더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꽤나 많은 작업적 영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이미지 자료를 많이 뽑아서 작업실에 붙여 놓을까 해요.
황재민 : 전시와 웹이 동시에 발행되고, 그 이후 지면 전시가 이어지는 순으로 전시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전시 공간-웹-지면으로 이어지는 전시가 (말하자면) 연쇄 구조를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공간에 물질로 제시된 작업물은 동시에 웹으로 옮겨지며 이미지가 됩니다. 이후 이미지가 된 작업물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 지면으로 이어집니다. 만일 공간에서 바로 지면으로 옮겨졌다면 이미지로 변환된 작업물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 같기도 한데, 웹이 공간과 지면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해준다고나 할까요? 그 때문에 공간과 웹, 그리고 지면, 이후에 또 다시 공간에서 전시를 한다는 이 순서가 무척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혹시 기획 과정에서 이 순서를 바꿀 생각도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만약 순서를 바꾸었다면, 전시 역시 많이 달라졌을까요?
이은지 : 웹 같은 경우는 기한이 없어 보이지만 보기보다 오류도 발생하고 영구적이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웹 전시를 과정적인 이미지들이 중첩되는 방식, 시뮬레이션 등 준비 과정에서부터 전시가 끝나기까지의 시간이 다 담겨있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이전 시간부터 담고 있기도 하고, 웹 자체도 그렇게 영구적이라고 생각이 안 드니까, 전시 전부터 계속 만지고는 있되 새탕라움에서의 전시와 동시에 시작되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지면같은 경우에는 수정이 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 오랫동안 남게 되잖아요. 편집을 더 세심하게 할 수밖에 없는 매체이기에 제일 마지막으로 배치하게 되었어요. 특히나 웹과 지면 디자인을 맡으신 조은지 디자이너가 제주도에 오지 않고 새탕라움 전시를 웹으로 경험한 다음 이후 지면으로 이어지게 되는 과정과도 연결될 것 같네요.
황재민 : 참여 작가진이 모두 흥미롭습니다. 작가 섭외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이은지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웹을 먼저 다루고 나서 지면을 만지게 된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점에서 조은지 디자이너는 저희 기획을 녹여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일 거라는 확신으로 섭외하였습니다. 유지영 작가의 경우, 앞서 A4용지와 같은 일반적인 틀에 관한 이야기처럼, 회화를 구성하는 캔버스라는 틀과 이미지에 대한 논제를 건드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섭외를 진행할 때 개인전 《One after another》(2019. 11. 1~11. 28, 전시 공간, 서울)이 열리고 있었거든요. 그때 네모난 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틀 자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슬아 작가는 입체와 평면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그 결과물들을 신체적으로 정렬하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었어요. 특히나 예전 작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플립 북 형태의 작업이었어요. 마찬가지로 웹과 지면도 신체로 넘겨 봐야 하는 공통점이 있어서, 프레임과 신체가 맞닿는 지점을 잘 드러내실 것 같아서 주슬아 작가를 섭외했어요. 오연진 작가는 워낙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지면을 완성도 있게 제작하는 것을 하나의 작업 목표로 두고, 사진과 회화 사이를 고민하는 인터뷰가 섭외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전시를 가장 물질적인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으실 것 같았어요.
전반적으로 신작을 제작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치 않아서 이미 있는 작업이 프레임을 옮겨 다니면서 어떻게 적응하게 만드는 지가 가장 중요한 화두였어요. 그래서 매체를 다양하게 다루는 분들이 1순위였던 것 같아요.
황재민 : 웹 전시에 사용된 이미지들도 인상 깊습니다. 작업 사진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설치 중인 현장 사진, (아마도) 스케치업으로 디자인된 가상 공간 이미지,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된 현장 사진 등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를 메타적인 시점으로 관찰할 수 있는 스마트폰 모양의 png 이미지, 혹은 ‘프레임’이 있는데요. 이미지의 층위가 흥미롭게 쓰인 만큼 다양한 이미지들이 어떤 경위로 등장하게 된 것인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황원해 : 웹 전시는 보시는 그대로 층층이 쌓여서 겹쳐진 이미지인데, 새탕라움 전시 시작 전부터 이은지 작가는 스케치업으로 만든 이미지부터 서로 주고받은 사진 자료들을 모아두었습니다. 설치기간 중에는 참여 작가들 모두가 직접 찍은 사진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조은지 디자이너에게 전송했어요. 웹은 미리 구축되어 있었고, 이미지들은 시간순으로 쌓이고, 전시 동선에 따라 파노라마식으로 배열된 거예요. 처음엔 몇 개 없던 이미지가 날이 갈수록 계속 늘어나게 된 거죠. 웹이라는 창구는 소통을 위한 것이기도 해서, 서울이나 외국에서도 볼 수 있게 새탕라움 전시 시작과 동시에 오픈을 한 거에요. 그리고 전시 기간 동안 전시가 태그된 SNS 사진들, 제주도 전시를 직접 찍은 다른 사람들의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계속 업데이트 되었어요. 웹의 즉각적인 특성을 활용했죠.
황재민 : 결국 그 시간 동안 쌓인 이미지가 400장이 넘는 거네요? 되게 재미있는 시간성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은지 : 웹 전시를 들어가면 이미지가 많다 보니 로딩 시간으로 인해 이미지가 쌓여가는 단계가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것 또한 전시 의도에 부합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웹과 지면의 다른 역할을 고려했을 때, 저희가 웹 전시에서 가장 집중한 것은 과정적인 부분이었어요. 물질성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계속 어떤 가능성을 실험하는 전시이다 보니까 계속 증식되거나 추가될 수 있는, 말하자면 편집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는 웹의 특징과 잘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전시 공간도 전시가 열리면 그 상태로 계속 가는 굉장히 일시적인 풍경이지만, 지면은 인쇄가 되면 수정할 수 없으니까, 웹의 특징을 이용해서 파편화된 과정을 드러내면 이 전시와 작가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지표처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미지를 취합하는 것이 일종의 전시에 대한 가능성을 던져보는 시도였던 것이죠.
황원해 : 웹 전시에는 이미지들이 다 섞여서 보이지만, 새탕라움 전시를 할 때 만들었던 단톡방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찍은 다량의 사진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는데, 각자의 관심사가 드러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웹 전시가 순간적인 각자의 관점으로 붙잡은 프레임의 집합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을 공유할 때 기억이 나는 게, 창밖이라든지 자유롭게 찍어서 보내는 사람도 있던 반면, 전시 동선을 따라 찍어 보내는 분도 있으셨어요. 같은 상황인데도 각자가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정말 달랐어요.
황재민 : 웹 전시의 방법론이 무척 흥미로운 한 편, 이것은 모범적인 온라인 전시는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각각의 이미지는 80% 정도의 오파시티를 가지며 흐릿하게 보이고, 또 한꺼번에 많은 이미지가 로드되기에 어느 정도의 지연도 발생합니다. 400여 장이 넘는 수많은 이미지가 겹쳐 있어 꼼꼼하게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웹 전시에는 전시의 가상공간 스케치와 설치 중인 현장 사진 등 오프라인 전시에서라면 노출되지 않을 정보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니까요. 웹 전시를 관람하면 전시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드는데, 정작 화면을 보면 볼 수 록 더 길을 잃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정보량이 많을수록 길을 잃는 인터넷 세상에 대한 비유 같다고나 할까요 혹시 웹 전시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마감된 것 역시 절대 실현되지 않아야 하는 전시의 성격과 관계가 있을지요? 또한, 웹 전시가 참여 작가인 조은지 디자이너가 구현했다는 점에서 혹시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주어졌나요?
황원해 : 절대 실현되지 않아야 하는 전시가 아니고, 필연적으로 원형이 실현되지 못하는 전시인 것 같아요. 저는 웹 전시가 원형의 실현이 불가능한 전시라고 생각하거든요.
제작에 있어서 조은지 디자이너에게 많은 자율성이 주어졌어요. 저희가 기본적인 동선이나 메인 페이지가 전시 입구처럼 있으면 좋겠다는 등 큰 틀만 제안을 했고, 이미지를 받아서 선택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은 서울에 있는 조은지 디자이너가 하셨습니다.
이은지 : 처음에 말씀드린 슬로피 조스바 작업의 일환으로 한 것도 있거든요. 그때 했던 시도에 이미 시간성이 담겨 있고, 복잡해 보이지만 그걸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오히려 더 친절한 설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래 하셨던 작업을 기반으로 저희는 전시를 기획한 입장에서 파노라마식 동선만 제안을 했습니다.
황재민 : 제약이 많은 공간에서 전시하게 되면서 공간 자체를 작업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웹 전시의 그런 작업으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다음 질문을 드리자면, 올해 COVID-19 팬데믹이 발생한 후 실제 공간에서 전시를 여는 일에 제약이 생기자, 온라인 전시를 기획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중 3D 공간을 활용한 사례가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혹시 웹 전시를 기획할 때 3D 공간을 염두에 두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황원해 : 저희가 웹 전시를 기획할 때는 팬데믹 상황 전이라서 웹 전시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졌을 때였거든요. 팬데믹 발생 후 온라인 전시가 많아졌죠.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3D 공간 전시가 아니어서 흥미로운 전시가 나온 것 같아요. 이후에 전시를 알게 된 분들은 팬데믹 상황 때문에 웹 전시를 진행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은지 : 원형이 절대 실현되지 않는 다는 개념이 큰 방향성이었던 것 같아요. 원형이 실현되지 않는 이상 비슷한 경험을 유도하도록 시도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매체에 맞게 어떤 점을 좀 더 보여줄 수 있을까, 혹은 없을까에 대해서 논의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황원해 : 3D로 공간을 구현해도 가상 공간이 실제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웹의 특성을 살려서 웹 전시를 진행했었어요. 요즘은 기획 의도랑 상관없이 3D 온라인 전시로 보이는 경우가 상황상 많아지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실제로 봐야지 느낄 수 있는 텍스쳐나 공간을 온라인에서 느낄 수 있을까? 온라인으로 꼭 전시를 해야 할 경우 3D로 만든 공간에 그림을 걸어놓는 전시가 아니라 웹의 특성을 이용한 다양한 전시가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이은지 : 전시장 안에서는 걸으면서 공간을 둘러보고, 웹에서는 스크롤을 통해 상하좌우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고, 지면 같은 경우에는 앞뒤로 넘어가면서 가끔은 뭉텅이로 지나쳐버릴 수 있는데, 이런 다른 걸음들을 어떻게 연결해볼까가 가장 중요한 연결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cut! cut! cut!》 웹 전시가 특정성이 있는 전시라는 것이 되게 동의가 되는 것 같아요. 이것도 물론 대안을 위해서 나온 전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진짜 대안으로, 방법이 없어서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3D 공간을 만드는 것 같고요. 이런 식으로 웹 전시가 나온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시도라는 점이 동의가 되네요. 사실 처음 웹 전시를 한다는 이야기를 보고, ‘아직도 웹 전시를 한단 말이야?’라는 생각도 들고 어색한 느낌을 받기도 했거든요. 놀랍게도 그런 느낌이 몇 달 만에 사라졌지만요.
다른 질문으로, 《cut! cut! cut! — index》에 대한 설명 중 작가의 작업세계를 대상체로, 프레임을 지표로 설정할 수 있다는 말이 무척 흥미로워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것은 작가의 작업세계와 프레임 간에는 필연적 인과가 존재한다는 생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작업세계와 프레임의 관계에 대해 기획진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계신지 부연해주실 수 있을까요?
황원해 : 작가는 필연적으로 프레임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요. 어떤 대상과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으면 그것을 끄집어내어 구축할 때 어떤 형태로든 프레임화시켜서 매체에 표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프레임에 대한 정의도 정말 다양하다고 생각이 되고요. 그래서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cut! cut! cut! — index》는 앞선 세 가지 프레임에 대한 총정리이자 동시에 작가들의 작업 세계의 지표를 또다시 프레임화하여 공간에 표현하는 방향으로 기획하게 되었어요. 받아들이는 게 모두 다를 것 같다고도 생각했는데…. 혹시 비평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황재민 : 저는 사실 ‘프레임’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말로 모든 사람에게 프레임이 중요한가? 사실은 중요하다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거의 모든 것이 될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게 프레임이 아니고 다른 언어로도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지지체라든가 캔버스라던가 다른 매체라든가. 그래서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황원해 : 프레임이라는 큰 틀을 잡았던 이유는, 구체적인 단어로 주제를 잡을수록 제약이 생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프레임에 대해 다양하고 자유로운 생각이 듣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에 지지체나 다른 단어로 지칭했을 때는 범위가 좁혀질 것 같더라고요.
황재민 : 그래서 전략적으로 제목을 지으셨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프레임이 작가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면서, 저는 오히려 기획 입장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작가들하고 짜낼 수 있는 되게 좋은 재료라고 해야 하나. 회화, 혹은 역사적 매체, 레가쉬 미디어를 다루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작가들이 모여 전시가 구성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 지점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은 최근 회화 작가에게조차 공유되고 있는 지대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워낙 회화를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해지고, 회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고, 우리가 역사적인 매체로 회화를 배웠던 그 시대와 현재 회화 작가의 관심사 사이에는 큰 분화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때문에 프레임이라는, 어떻게 보면 임의적일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한 게 재미있는 선택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 다른 작가분들과 이야기하시다 보면 그런 게 있으세요? 사용하는 단어에 뜻이 서로 안 맞는다 같은?
이은지 : 안 맞는다기보다 사용하는 단어들이 서로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씨위드 지면 전시에 보면 공통 질문에 대한 작가들의 대답이 담겨 있는데, 프레임 대신하는 용어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기획진의 경우만 봐도 저는 틀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편이고, 황원해 작가는 프레임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황재민: 저는 근래 나타난 회화 작업들이 공통적으로 통용 가능한 단어나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스무 살 이후에 우연히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나는 미술의 외부자’라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회화 같은 것은 특히 관심사가 아니었죠. 또 공부를 하겠다고 관련 책을 읽다 보면, 포스트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아 쓰여진 ‘미술 이론’ 서적들은 회화를 공공의 적으로 상정하고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책을 읽으면서 회화는 물화된 상품이구나, 공공의 적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나중에 《Painters by Painters '18》 인터뷰 기획을 하고 나니 회화를 하시는 분들의 태도와 작업이 뭔가 예전과 달라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은데, 이번 《cut! cut! cut!》을 통해서도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이은지 : 프레임을 회화적 틀로 생각했을 때는 신체성을 벗어날 수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다루는 프레임들이 다른 의미를 지니고 매체도 다르다고 해도 결국 동선, 신체와 관련된 것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황원해 : 신기한게 이은지 작가는 항상 신체 동선에 관심을 많이 갖는데, 저는 사람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건물에 있는 차갑고 딱딱한 표면을 늘 떠올렸어요. 오래 알던 친한 사이인데도 관점이 정말 다른 거죠. 저는 표면적인 것에 관심이 있고, 이은지 작가는 동선이나 내면적인 것에 관심이 있고. 오래 보았음에도 다르다는 것을 깨우치니까, 모두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관조해서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공감되네요.
이은지 : 제가 동선, 즉 매체 이동을 했을 때 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서 생각했다면, 황원해 작가는 재단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줬거든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결과물이 되어 나온 것 같아요.
김정인 : 저는 프레임을 제가 선택하는 기준선이라 생각하는데요. 이번 전시를 통해 프레임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접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황재민 : 지면 전시 인터뷰에서 김정인 작가 같은 경우는 프레임이 소외된 이미지와 그렇지 않은 이미지를 나눈다고 표현하셨잖아요. 그 부분도 되게 흥미롭게 느꼈었는데, 저한테는 프레임이 영화 프레임처럼 굉장히 형식적이고 매체적인 느낌이어서 그런지 또 다르네요. 이 전시에서 프레임은 좋은 단어였던 것 같아요.
《cut! cut! cut!》은 마지막 전시인 《cut! cut! cut! — index》를 통해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cut! cut! cut! — index》의 설명을 참조하면 이것은 이전 전시에 대한 총망라인 동시에 어떤 실마리들에 대한 전시인 것 같았어요. 그렇기에 마지막에서조차 전시가 완결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흥미롭기도 하고요. 완결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기획진의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황원해 : 접근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전시 공간에서 마무리되는 《cut! cut! cut! — index》 전시는 지면과 웹의 특성을 총망라한 전시입니다. A4라는 지면의 제약을 따라 각각 세로 297mm사이즈로 위에서 아래로 7명의 작업이 위치하게 하고, 웹의 파노라마식 구성처럼 공간 전체를 둘러서 웹과 지면을 공간으로 가지고 오는 방식이었죠. 애초에 설정한 프레임과 돌고 돌아 다시 지표가 되는 설정 자체가 처음부터 완결성을 갖는 개념이 아니여서 의도하지 않아도 공간에서 완결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공간에서 진행한 전시가 다시 이미지로 SNS를 떠돌고, 다시 지면인 후도록으로 나오잖아요.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것이죠.
황재민 : 전시 서문을 통해 유추해보면, 가상 공간 역시 전시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가상 공간은 웹 전시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낼 뿐, 전시의 다른 부분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혹시 가상 공간이라는 모티브는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요?
예를 들면, 참여하는 작가분들이 그런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서, 가상공간이 작업을 만드는 어떤 주제로 작용하면서도 섞여서 슬쩍슬쩍 존재감을 드러내는 약간 그런 키워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황원해 :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는데, 주슬아 작가는 애니메이션이랑 영상에 가장 가까운 분이라 가상세계에 관해 생각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은지 : 시선이 가상공간에서 중요한 지점같은데, 원래의 작업이 어떻게 또 다른 시선으로 보일까를 고민하면서 지면 전시 결과물이 나오는 걸 보면 가상으로 인식하고 하신 것 같기도 해요.
황원해 : 주슬아 작가 작업이 지면 전시에서도 확대되어 있잖아요. 애니메이션과 같이 과장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면이 굉장히 일관적인 작업 태도라고 생각되었어요. 최근에 《cut! cut! cut! — index》후도록 때문에 사진을 찍었는데, 작업이 원래도 형광에 가까운데, 후레쉬를 터트리고 찍어서 인공적인 이미지를 추구하시는 모습이 한결같은 작업 태도라고 생각되었어요.
이은지 : 주슬아 작가는 평면을 입체로 구현하기도 하고, 그 입체를 다시 평면으로 옮기기도 하면서 작업을 하시잖아요. 작품과 벽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일 것 같아요. 지면 전시를 위해서 3차원을 재단할 것인지 2차원 그 자체를 재단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인데, 작업에서 고민한 지점이 설치 방식에서도 드러난 것 같아요. 황원해 작가는 그 경계에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이 벽에 붙은 부분도 있고 바닥을 타고 공간으로 나오는 부분도 있고. 저나, 김정인 작가, 유지영 작가의 경우는 벽에 작품을 안착시켰고요. 지면을 위한 재단선을 공간에 표시했었는데, 주슬아 작가는 입체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선과 각도를 달리 재단하다 보니까 재단선이 바닥, 벽, 천장을 넘나들면서 부착되었어요. 오연진 작가는 예전 인터뷰에서 인화하려는 필름과 나중에 붙는 지지체 간의 거리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나네요. 새탕라움에서의 작품도 벽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평행하게 매달려 있으면서도 천이어서 흐물흐물했어요. 작품 위에 재단선을 부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뒤에 있는 벽으로 선이 이동했습니다. 지면 전시에서 벽도 하나의 프레임으로 재단되었기에 설치에 따른 작품과 벽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다음 질문을 넘어가 보면 이건 사실 제 관심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질문인데요. 저는 캔버스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 혹은 프레임 바깥으로 확장하며 외부 세계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회화의 어떤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회화이지만 입체로 확장되거나 다른 사물이나 상황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작업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cut! cut! cut!》같은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작업을 하나로 놔두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변주하고 확장하고 연결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경향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단 하나의 개별적인 작업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모종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법이 기획진의 작업 방식과 연관되어 않았을지, 혹은 기획뿐만 아니라 작업에도 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어서 한번 질문을 드려보고 싶었습니다.
황원해 : 말씀하신 대로 요즈음 회화뿐 아니라 미술계 대부분이 외부세계와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려 하지 않아도 형성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품을 볼 때 자신이 해석하는 것에서 끝났다면, 지금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잖아요. 그것이 나의 시선이 되고, 같은 시선을 가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거든요. 각자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루트가 다양하게 생겨났다고 할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 《cut! cut! cut!》은 네트워크를 권장하고 요구하는 것은 아닌데 뭔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을 짚어보고, 저희도 현재 그 흐름 안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선을 바라보는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인 작업 과정에서는 모아레와 같은 디지털에서 사용되는 용어와 입체와 평면 사이 지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황재민 평론가님의 말씀처럼 제 작업에도 분명 적용되는 부분이 자연스레 있는 것 같아요.
이은지 : 작업과정과 연결지어 말씀드리면, 저는 작업 뒤편에 있는 것들이 작업화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최근 개인전 《Creeper》(2020. 11. 7~11. 22, Keep in Touch Seoul, 서울)의 경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시장 밖에서 봤을 때는 전시가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는 몸을 돌려서 봐야해서 작업을 생각보다 전체적으로 못 보는 공간이었거든요. 두 가지 자세로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올 이미지들을 세세하게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밖에서 찍은 전체가 하나로 보이는 이미지들도 올라올 것이고, 안에서 찍었을 때는 저의 작업이 촘촘하게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하게 재단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작업의 뒤편, 작업 환경에서부터 시작되어 이 개인전 때는 작업끼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생각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에 의해 크롭(재단)된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황재민 : 개인적으로 텀블벅 리워드가 흥미롭기도 했는데요, 특히 오픈 타입 폰트를 리워드로 준다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전시가 완결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된다는, 《cut! cut! cut!》의 콘셉트와 관련이 있을까요?
이은지 : 아까 계속 일반적인 틀을 얘기했는데, 폰트에서 통용되는 언어적 틀인 알파벳이 작가들의 손글씨로 모이면 의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템플릿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새탕라움에서 잡지를 만들었듯이, 전시 공간 뒷편이 판화 공방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서 전시에서도 공간의 성격을 이용하려 했어요. 이러한 공간 특성과 연결되는 결과물로 템플릿을 결정했어요.
황원해 : 마스킹 테이프는 각 작가의 작품 사이가 15mm 정도 떨어져 있어요. 간격에 맞는 15mm 두께를 가지고 의미 있는 굿즈를 만들어보자해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스킹 테이프 로고에 쓰여있는 문구가 ‘cut! cut! cut! Number’인데, 전시도, 테이프도 나열되어 있어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템플릿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템플릿을 구입하면 연동되는 워드 파일을 드리고, 그 안에 내용을 적어서 출력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cut! cut! cut!》도 호환되는 전시인 것처럼 호환될 수 있는 템플릿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템플릿이 손글씨로만 쓰일 수 있는 게 아니라 워드 파일을 통해 컴퓨터로도 사용되고, 편지지나 달력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으니까요. 마스킹 테이프도 알파벳과 숫자가 포함되어 있으니 찢어 붙여질 수 있어서 전체 굿즈가 다 호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굿즈에 대한 아이디어를 조은지 디자이너가 적극적으로 주신 덕에 저희도 이것이 굿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전시가 확장되는 느낌으로 같이 신나게 제작하고 있습니다.
김정인 : 폰트에서 각자의 작업이 글씨체에 반영된 것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황재민 : 굿즈 하나하나도 물 샐 틈 없이 제작되었군요. 장장 1년여에 걸친 실험적인 전시를 마쳤으니,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혹시 기획진 여러분께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을 몇 가지씩 꼽아주신다면요?
황원해 : 제주도에서 전시할 때에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작품을 가지고 가서 설치해드리겠다고 했는데, 작가분들 모두 제주도로 오셔서 직접 설치를 하신 거예요. 덕분에 무사히 잘 진행되었고, 정말 감동하였습니다. 기획진들이 모두 작가들이니까 더 가능했던 것 같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고, 애쓰는 것이 서로에게 닿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새탕라움 전시가 진행되었던 1월 초는 코로나19 발생 전이예요. 그때는 마스크도 안 썼고, 지금과 너무 분위기가 다른 것이 이상하네요. 같은 해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 2020년의 처음과 끝에 전시를 하다 보니 그런 다른 점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김정인 : 공간이 사무실과 같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분들이 설치하러 오시기 전, 공간 보수 작업을 하던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은지 : 작가분들 섭외했을 때가 기억이 가장 많이 나요. 그때 일정들이 겹쳐서, 제가 한분 한분 뵈었거든요. 이 전시가 어떤 큰 주제를 확고하게 정해놓기보다 계속 가능성을 실험하는 전시이고 플랫폼을 제공하는 방식이었잖아요. 그래서 이 전시가 작업의 발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제안을 수락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모두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셔서 좋았고, 전시에 관해서 설명드리고 이야기를 듣던 그 순간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황재민 : 1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하는데 중간에 빠지신 작가분들도 없고, 트러블 없이 잘 진행된 것 같아서 그것도 진짜 놀라운 것 같아요.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에서 끝나는 것 같아서요.
이은지 : 플랫폼 위주의 전시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황재민 :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것이 작가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작업을 풍부하게 만드는 기회였으니까요?
황원해 : 네, 그리고 수평적인 분위기여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모두 작가로서 같이 전시를 만들어보자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다들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전시를 진행해 주신 것 같다고 생각돼요.
이은지 :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3월에 북아현동 한 공간에서 열린 《Propping》(2020. 3. 11~3. 24, 서대문구 북아현동 1-778, 서울)이라는 전시도 기억나네요. 그 전시도 작가들이 모여서 기획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프레임이라는 단어 대신 지지체라는 단어를 썼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기도 했고, 작가들이 공통된 개념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전시가 프레임이라는 개념으로 각자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바쁜 와중에도 중심을 지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저 역시도 그 과정에서 제가 집중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더 확실하게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모든 작가들에게 그런 전시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