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플라뇌르
–최재혁/소마미술관 큐레이터
플라뇌르(flâneur)는 프랑스어로 ‘도시를 산책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단지 거리를 여유롭게 거니는 사람이 아니다. 눈으로는 관찰하고 머리로는 사유하며 도시의 다양한 면모를 탐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그의 책 『아케이드 프로젝트3 : 도시의 산책자』에서 플라뇌르를 소개하는데, 이를 도시에 대한 적극적인 관찰자의 문화적 행위로 인식했다. 황원해의 작업 또한 도시에 대한 관찰과 사유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대학에 진학한 20살부터 홍대 앞과 상수동을 활동의 근거지로 두고 서울과 경기권의 여러 지역을 이주하듯 살아왔다. 미술을 공부하고 예술가로 성장하는 시기에 자연스럽게 마주한 도시풍경과 환경은 작업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작가에게 도시 이미지는 작업의 오래된 소재였다. 전작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건축적 요소를 합성하여 공간에 재배치하거나, 도시의 기하학적 요소와 패턴을 겹치고 합성하는 방식을 시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표피적 이미지를 활용하기보다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에 집중했다. 작가가 오랜 시간 생활해온 홍대 앞과 상수동, 합정동은 소비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다. 어제 없던 상점이 오늘 영업을 개시하고 30년 전통의 가게도 갑자기 사라진다.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고 세워진다. 짧은 시간에 많은 변화를 경험하는 장소성을 지니고 있다. 유동하는 사람들, 현란한 광고판과 높이 솟아오른 고층빌딩은 제한된 땅과 고도를 두고 각축을 벌인다. 도시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공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각자의 기억 속에서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장소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은 경험자의 기억 속에 이미지로 존재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이미지를 중첩시켜 추상회화로 표현한다. 황원해의 작품에는 고층 건물 유리에 반사된 빛, 비온 뒤 땅에 고인 물에 비춰진 일렁이는 표면, 안개에 덮인 도시를 상상하게 하는 불명확한 이미지들이 반투명 레이어로 겹쳐 표현되고 있다. 작가는 일정한 규칙과 유연성에 의한 도시풍경 위에 감정과 기억의 겹을 추상화로 그렸다.
전시 제목에서 ‘모듈’은 일정한 규칙을 위해 규격화된 단위를 말한다. 황원해 작업의 모티브가 된 모듈은 건축에서 창과 공간의 구획을 구분 짓는 ‘네모’ 형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시장 초입에서 만날 수 있는 〈Streaming〉은 벽면의 드로잉이 캔버스의 모듈을 연결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중요한 특징인, 건물사이로 노출되는 산의 실루엣을 상상할 수 있다. 맞은편의 〈Sheet〉는 검정 안개가 자욱한 흑백 정원을 연상케 한다. 에어브러시를 활용한 벽면 드로잉이 도시와 자연을 혼합시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미지를 네모의 캔버스 안에 가두려 하지 않고 벽면 드로잉을 통해 전시장 전체로 확장시킨 것이다. 또한 본 전시에서 활용한 가장 특징적인 재료는 ‘스크린톤(Screen Tone)’이다. 스크린톤은 흑백의배경과 패턴을 표현한 스티커형 필름이다. 과거 출판만화에 주로 사용했으며, 평면의 만화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입체적인 도시 이미지를 평면에 담아내고자 한 작품이 드로잉, 에어브러시, 반투명 시트, 스크린톤 등 다양한 기법과 재료와 만나며 보는 사람의 인지 속에서 입체화 되도록 의도하였다. 이는 전시장 안쪽 공간 〈Modular Vision〉 즉, 모듈의 환영으로 완성된다.
발터 벤야민이 플라뇌르의 개념을 언급한 시기는 19세기 파리가 소비자본주의에 의해 근대도시로 변모하는 시기였다. 상가를 뜻하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유행, 소비, 광고 등 산업자본주의 현상의 장소를 상징한다. 서울의 소비자본주의의 온상인 홍대와 상수동 지역에서 살아온 작가는 지역의 특색을 근간으로 감성적 접근을 통해 작품화한다. 예술가는 결국 삶과 환경에 의해 주어진 사고와 내면의 감정을 이미지로 그려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고민과 상념, 재해석의 과정이 수반된다. 네모의 캔버스 안에 머물던 작가의 에너지가 전시장을 채우는 드로잉의요소와 만나 확장됨과 동시에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고 사유하도록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