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제4의 벽
–정현
황원해는 건축물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질감과 형태의 시간을 초월한 건축 양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그는 이를 그와 유사한 공간에 맞추어 설치한다. 작가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해체된 이미지는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공간으로 이동한다. 일견 무질서하고 복잡해 보이는 전시는 새로운 건축적 이미지 구축을 위한 참조점으로서 작가의 철저한 계획에 기반하고 있다.
지난 개인전 《Phantasmagoria》는 그 최적의 사례로 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황원해는 보안여관 실측을 기반으로 한옥과 현대 건물의 파사드를 그린 작품들을 적소에 배치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전시는 레노베이션된 적산 가옥의 다듬어지지 않은 벽과 구조체 표면을 드러내고, 작가는 표면의 틈에 그리거나 다층의 투명, 불투명 매체를 공간에 겹치는 등 다채로운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는 개념과 실체가 모호해진 공간감을 불러일으켰다.
황원해는 이번에 을지로의 공간 형에서 《제4의 벽》[1]이라는 이름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전시장 위치와 건물 외관 탓에 전시는 과거의 그것과 유사할 것 같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다르다. 보안여관을 비롯한 기존 신생 공간이 폐허처럼 구조와 마감재를 거칠게 드러내는 것과 달리 공간 형은 화이트 큐브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명 ‘제4의 벽’이 의미하듯 공간 형의 이례적으로 좁고 긴 형태는 관람을 위한 적절한 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벽 속에 갇힌 듯 쉬이 움직일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을 보안여관에서의 불완전한 표피와 같이 신작을 위한 매개체로 사용한다.
〈Moire〉[2] 시리즈로 명명된 신작들은 공간 형 전체를 둘러싼 ㄷ자형의 패턴 시트지 작업 위에 패턴의 일부를 반영한 회화 작업이 얹힌 단순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복도식 전시 공간에서 관람객은 전체가 아닌 부분을 좇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는 도시 건축물의 표피가 연속적으로 펼쳐진 실제 상황을 파노라마 이미지―불연속적 콜라주―로밖에 담을 수 없는 재현의 한계를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불완전한 인식은 우리가 세계를 보는 경험 그 자체다. 황원해의 신작에서 해체나 파편을 연상시키는 구체적 표상이 점차 희석되고 패턴의 반복과 연속성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간섭무늬’라는 연작 제목처럼 패턴은 관람객의 미묘한 움직임에 따라 어긋나며 예상치 못한 운동감을 드러낸다. 과거 해체의 이미지와 공간을 사용하던 작가는 이제 온전한 세계상을 먼저 구축하고 전시장을 불완전한 인식을 야기시키는 도구로 활용한다. 이는 바로 해체된 이미지를 경험하기 위한 구축 행위라는 새로운 유형의 탄생이다.
[1]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상의 벽을 뜻하는 연극 용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 10. 5~1784. 7. 31)가 주창하여 사실주의 연극의 기반이 된 개념이다. 이 벽을 사이에 둔 관객과 배우는 서로를 간섭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2] 간섭무늬, 물결무늬, 격자무늬라고도 하며,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모양이 여러 번 거듭하여 합쳐졌을 때 주기의 차이에 따라 시각적으로 만들어지는 줄무늬를 말한다.